(12-完)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묵(遺墨) | ||||||||||||
글쓴이 = 윤종준 성남문화원 상임연구위원 | ||||||||||||
# 에필로그 지금까지 안중근 의사가 러시아와 중국 등지에서 펼친 독립투쟁의 역사와 사상 등에 대해 소개하면서 안중근 의사 기념관(관장 김호일 교수)에서 발행한 ‘대한의 영웅 안중근 의사’, 안 천(신흥무관학교),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발행한 ‘안중근과 하얼빈’, ‘안중근 자서전’, ‘재판기록’ 등의 자료를 참조했다. 끝으로 지난 7월 9일부터 7월 17일까지 제5기 안중근 의사 해외독립 투쟁유적지 탐방단에 참여를 허락해 준 안중근 의사 숭모회와 기념관 측에 감사의 마음을 올리며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집필한 졸고를 지면을 통해 연재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기호일보사 측과 열독해주신 애독자 여러분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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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청초당, 연지 글씨는 안중근 의사가 1910년에 쓴 것으로 하얼빈의 조린공원에 세워져 있다. 조린공원은 안 의사가 이등박문 저격 계획을 구상했던 곳이고, 조국의 독립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임시로 묻히기를 원했던 하얼빈 공원의 이름이 바뀐 것이다
※ 장부수사심여철 의사임위기사운 - 장부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기운이 구름 같도다
박은식은 ‘한국통사’에서 안 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쓴 붓글씨가 200편이 쓰여졌다고 하는데 현재까지 실물이 확인된 것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 중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國家安危 勞心焦思(국가안위 노심초사)’ 등 26폭의 글씨는 국가지정 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됐다. 안중근 의사가 남긴 글씨들은 안 의사 생애에서 활동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특징 있게 분류할 수 있다. 그가 천주교인으로서 독실한 신자였음을 보여주는 종교적 내용, 교육자로서 활동했던 교육사상이 담긴 작품, 독립투사로서 살신성인의 국가관, 평화주의 사상가로서의 모습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 애국사상이 담긴 작품 # 믿음과 인격수양의 내용 안중근 의사가 남긴 필적 중에는 빌렘 신부에게 보낸 2통의 엽서가 현존하고 있다. 러시아로 망명하기 전에 국내에서 1906년 1월 6일자로 보낸 것과 망명 후인 1908년 10월 1일자의 것이 있다. 그리고 천주교인으로서 철저한 믿음을 지녔던 안 의사의 사상이 담긴 글씨도 전해온다. ‘極樂(극락)’, ‘天堂之福 永遠之樂(천당지복 영원지락)’은 곧 성서(聖書)의 내용을 통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천당의 존재와 신앙에 대해서 안 의사는 그이 자서전에 “상은 천당의 영원한 복이요, 벌은 지옥의 영원한 고통으로서, 천당에 오르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한 번 정하고 다시 변동이 없는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 교육사상이 나타난 작품 안중근 의사는 한때 학교를 설립하고 청년 교육에 앞장섰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작품 가운데 유명한 것이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이다. 즉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뜻으로, 안 의사가 교육자로서 활동하면서 가진 사상을 사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글귀는 오늘날 청소년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내는 글귀이다. # 평화사상을 나타낸 작품
“동양을 보호하려면 먼저 정계를 고쳐야 한다. 때를 놓쳐 기회를 잃으면 후회한들 무엇하리오”, “동양대세 생각하매 아득하고 어둡거니 뜻 있는 사나이 편한 잠을 어이 자리, 평화시국 못 이룸이 이리도 슬픈지고 침략전쟁을 고치지 않으니 참으로 가엾도다.” 이러한 내용의 한문 구절도 안 의사 유묵 가운데 일부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들은 안 의사가 남긴 글씨들 가운데 지극히 일부를 소개한 것으로 안중근 의사가 남긴 글씨들은 한결같이 단지동맹시 약지를 자른 왼손의 손도장을 찍었고, ‘大韓國人 安重根(대한국인 안중근)’이라고 서명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징적인 것은 동일한 내용의 작품이 없다는 점이다. 안 의사는 같은 내용의 작품을 한 편 이상은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안 의사는 그의 생애에서 보여준 활동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을 남겼다. 안 의사의 글씨는 하얼빈의 조린공원(안 의사가 조국 독립 전까지 묻히길 원했던 하얼빈공원)이나 서울 남산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 등에 돌에 새겨 세운 것들이 있는데, 우리는 안 의사의 나머지 유묵들도 하루 빨리 찾아서 보존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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