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 독립투쟁유적 답사기

(5)평화의 쥐 도적 이등박문을 사살하다

성남까치 2009. 10. 5. 09:11

(5)평화의 쥐 도적 이등박문을 사살하다
글쓴이 = 윤종준 성남문화원 상임연구위원

 

 

 

2009년 10월 04일 (일) 14:51:13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기차역에는 러시아 군인들이 도열한 가운데 이등박문을 맞이하기 위한 성대한 환영행사가 치러지고 있었다. 이 때 여섯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고, 러시아어로 “코레아 우라!(대한만세)”라고 외치는 힘찬 만세삼창 소리가 울렸다. 그 총성은 대한의 영웅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이라는 ‘평화의 쥐 도적’을 처단한 장엄한 역사의 메아리였다.

3발은 조선침략의 원흉이요, 동양의 평화를 위협하는 이등박문을 정확히 쏘아 쓰러뜨렸고, 또 3발은 옆의 수행원들을 향했다. 안중근은 오인해서 다른 사람을 쏘았을 경우를 계산해 이등박문 옆의 비슷한 사람에게 쏜 3발도 명중했다. 이 사건은 온 세계를 놀라게 했고, 일본의 침략 근성을 세계 만방에 깨닫게 해준 쾌거였으며, 대한의 혼(魂)이 살아 있음을 깨우쳐 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어느 날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애국 선열들이 머리를 맞대고 치밀하게 계획하고, 안중근 의사가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자신의 젊은 목숨을 희생으로 바쳐서 얻은 대승(大勝)의 전과(戰果)였다. 안중근 의사는 애국지사 안태훈의 아들답게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의생으로 이 나라의 꺼져가는 혼불을 되살려낸 것이다.

 

 

  # 삼엄한 경비속에 오전 9시 30분 의거 성공

안 의사는 사전 답사를 통해 치밀하게 작전을 구상했고, 10월 26일 아침 7시경, 권총을 휴대하고 하얼빈 역에 도착했다. 역 안에는 이미 러시아 군인들과 출영객들이 가득 들어차 혼잡했다. 역 안 찻집에서 대기하던 중 마침내 운명의 순간은 다가 왔으니, 9시경 러시아 의장대가 영접하는 가운데 이등박문이 타고 있는 전용열차가 플랫홈에 들어왔다. 곧 이어 이등박문을 마중 나온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체프가 열차에 올라가 이등박문을 맞이해 내려왔다. 열차에서 내린 이등박문은 의장대를 사열하고 외국 영사단(領事團) 앞으로 가 인사를 받은 후 러시아 군대를 사열한 후, 일본 거류민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안 의사는 러시아 군대의 뒤쪽에서 절호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등박문이 일본 거류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순간, 안 의사와 10보 가량 떨어진 위치에 왔을 때, 안 의사가 들고 있는 브로우닝(Browning)식 권총이 불을 뿜었다. 가슴과 흉복부에 3발의 총알을 맞은 이등박문은 무어라 중얼거리며 쓰러졌고, 곧바로 기차에 다시 올라 수행의사인 고야마(小山)에게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약 20분 만에 목숨이 끊어졌다. 안 의사는 본래 이등박문의 얼굴을 정확히 알지 못하므로 여기서 한 번 잘못하면 천하대사를 그르칠 것으로 예상하고 만전을 기하기 위해 일본인 중에 의젓해 보이는 자들을 향해 3발을 더 쏘았다. 하얼빈 일본총영사 가와카미(川上), 비서관 모리(森), 만주철도 이사 다나카(田中) 등이 차례로 총상을 입게 됐다.

   
 
이 때가 바로 오전 9시 30분. 총성이 울림과 동시에 러시아 헌병들이 안 의사를 덮쳤으나 안 의사는 민첩하게 눈 깜짝하는 사이 완벽하게 작전을 수행한 것이다. 헌병들이 덮쳐 힘에 밀려 넘어지면서 권총을 떨어뜨렸던 안 의사는 곧장 일어나 러시아어로 “코레아 우라!(대한만세)”를 세 번 외친 후 의연하게 구속됐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당당하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자신은 ‘대한 의군 참모중장’의 직분으로 침략자 원흉 이등박문을 처단한 것은 정당한 일이므로 만국공법으로 본인을 정당히 재판하고, 의군참모중장으로서 예우해 줄 것을 요구했다.

  # 중국에선 동아시아 제일의 영웅으로 추앙

일본에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고, 조선의 백성들은 감격의 소식으로 전해졌다. 세계는 경악했고, 일본에 패전한 중국과 러시아는 아픈 응어리를 푼 듯이 기뻐했다. 동경 일일신문과 대한매일신보 등에서 호외(號外)가 발행됐고 해외에 망명,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지사들은 환호의 찬사를 보냈으나,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있던 조정에서는 당황했다. 특히 중국은 자기들의 원수를 갚은 듯 기뻐했다. 당시 중국의 국가주석 원세개(袁世凱)는 시를 지어, “평생을 벼르던 일 이제야 마쳤구려. 죽을 땅에서 살려는 건 장부가 아니고 말고. 몸은 삼한(三韓)에 있어도 만방에 이름 떨쳤소. 살아선 백 살이 없는데 죽어서 천 년을 가오리다.”라고 안 의사의 거사를 찬양했다. 중국은 그 후로 일본의 침략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면서 안중근 의사를 그들의 ‘군신(軍神)’으로 받들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 모택동과 장개석은 공통으로 안 의사를 호국신(護國神)으로 받들었고, 현재도 대만과 중국에서는 안중근을 동아시아 제일의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

이등박문은 가슴과 배에 치명상을 입어 절명했고, 시신은 그가 타고 온 전용열차에 실려 대련으로 운송돼 다시 배편으로 일본까지 운송됐다. 하얼빈역 플랫홈의 이등박문 피살 지점에는 일본인들이 흉상을 세웠었는데 1945년에 해방이 되면서 중국정부가 철거했다. 이제 그 자리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고 다만 100년 전 그날의 역사만이 장엄하게 기억될 뿐이다.

   
 

현재 중국은 티베트에서의 유혈 충돌을 비롯해 소수민족들의 소요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 역시 소수민족을 자기네 울타리 안에 동화시켜 나가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등박문 저격 지점에 대한 현장답사는 하얼빈역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단체사진 촬영조차도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 할 정도다. 백두산을 비롯한 역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에서는 공개된 장소에서 현수막을 들고 사진을 찍을 수조차 없다. 내가 하얼빈역을 답사할 때에도 현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역장이 승인한 조건은 단 10분간 만 현장에 머무른다는 조건이었다.

 

 # ‘그물 말리는 곳’ 뜻인 하얼빈

하얼빈(哈爾濱, Harbin)은 현재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성도(省都)이고, 중국 성시(省市) 가운데 최대의 면적에 두 번째로 많은 인구를 자랑하고, 행정구역은 8구 3시 7현으로 나뉘어져 있다. 2008년 말 호적 총인구는 989만9천 명. 48개 민족으로 구성되고, 그 중 소수민족은 66만 명이다.

중국 동북 평원의 중앙, 흑룡강 최대의 지류인 송화강(松花江) 연변에 위치하면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을 이룬다. 하얼빈은 만주족(族)의 말로 ‘그물 말리는 곳’이라는 뜻이다. 19세기 무렵까지는 불과 몇 채의 어민 가구가 사는 한촌(寒村)에 지나지 않았으나 제정(帝政) 러시아의 동청(東淸)철도의 철도기지가 된 이래 상업과 교통도시로서 발전했으니 그 당시 하얼빈과 대련지역은 러시아가 다스리고 있었던 곳이다. 1932년에는 인구 38만 명이 됐고, 1954년에 성도(省都)가 됐다. 공산화 이후 보일러·전기기계·증기터빈 공장의 3대 동력공장을 중심으로 동력기계공업의 도시로서 발전했으며, 교육에서도 하얼빈공업대학이 가장 인기있는 대학이다. 하얼빈 시가지는 100년 전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영향이 뚜렷하게 남아 있어 러시아풍(風)의 건물이 늘어섰고, 중앙대가(中央大街)는 ‘동양의 모스크바’로 불릴 정도로 번화해 프랑스의 최신 패션이 일주일 이내에 하얼빈에 유행할 정도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개인 시간을 중시하고, ‘오늘 번 돈은 오늘 쓴다. 저축은 없다.’고 할 정도로 낙천적 생활을 누리고 있다. 해마다 하얼빈 한국주간 행사가 열리고, 조선민족예술관에는 ‘안 의사 기념관’이 설치돼 살신성인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애국의 붉은 핏물 마디 잘린 손 도장은
기도문을 새긴 채
바람 벽에 걸어 두면
겨레여, 의로운 분노
심장 다시, 뛰나니

나라 사랑 열사들 한 맺힌 어제가
아직도 저릿저릿
전기처럼 오고 있어
동지여
대한 동지여
억조창생 결의여!
              -한춘섭 작시, <억조창생(蒼生) 결의여!> 중에서

 

 

 ※※※ 이등박문 총상 그림 설명

   
 
  ▲ 이등박문 총상부위  
 

이등박문 수행의사인 오야마(小山)의 진단에 따르면 총알 3발은 모두 들어간 곳만 있을 뿐 나온 구멍이 없이 몸 안에 박혀 있는 맹관총창(盲管銃創)인데, 첫 번째 총알은 우상박(右上膊) 중앙 외면에서 그 상박을 관통해 제 7늑골을 향해 수평으로 들어가 가슴 안에 다량의 출혈을 유발시켰다.

두 번째 총알은 오른쪽 팔꿈치 관절 바깥쪽으로부터 그 관절을 관통해 아홉 번째 늑골에 들어가 흉막을 관통해 왼쪽 늑골 밑에 박혔고, 세 번째 총알은 상복부의 중앙에서 우측으로부터 들어가 좌측 복근(腹筋)에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