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네 번째 빙하기(뷔름 wurm)가 종료되는 기원전 1만 년경부터 사람들은 큰 강가에서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집트의 나일강 강가, 유프라테스와 디시리스 강 유역에서는 기원전 9천 년경부터 사람들의 정착이 시작됐으며, 한반도 내의 큰 강가에서는 기원전 6천 년경부터 정착이 시작됐다. 고고학적으로 기원전 1만 년 전까지 지구상에 약 500만 명의 인구가 있었으며, 정착과 더불어 농경이 시작되면서 4천 년이 지나서 지구상의 인구는 약 8천60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구석기시대는 기원전 70만 년에서 기원전 1만 년 전까지로 보고 있다. 최초의 인류는 기원전 200만 년을 전후해 남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에서 탄생되고 생활한 흔적이 확인되었지만 이 시기의 사람들은 그 다음단계의 사람들과 체질적으로나 문화적(석기제작과정)으로 연계흔적이 확인되지 않아 현인류의 직접조상은 중국 주구점(周口店 유적, 1927~37년까지 발굴)에서 발견된 북경원인(Sinanthropus pekinensis, Homo erectus)으로 보고 있다. 근거는 북경원인이 최초로 불(fire)을 제작하고, 최초로 석기제작(shaped the first stone tools)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진 동물을 사냥한 흔적이 가장 확실하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중국 북경 부근의 주구점 유적에서는 주구점 북경원인 외에 중간층위 해당되는 중기 구석기시대(기원전 8만5천~3만5천 년)에 속하는 주구점 15지점(周口店 第15地點)이 확인됐으며, 주구점 가장 정상의 층위에서는 후기구석기시대(기원전 3만5천~1만 년)에 해당되는 소위 산정동인(山頂洞人)화석이 발견돼 구석기시대 인류사를 연구할 수 있는 남·여와 노인 등 50개체의 인류화석이 확인됐다. 상기한 바와 같이 최초의 진정한 사람으로 추정되는 북경원인은 석기제작, 사냥과 식물채집 등을 실시해 적어도 몇십 명이 결합해 공동(군거 群居)생활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공동생활이 몇십 년 지나서 최초로 발전단계에 이른 시기를 ‘고인’단계(古人段階)로 보고 있다. 이 ‘고인단계’ 시기는 생활도구제작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원인(猿人)’단계를 벗어나서 남·여가 혈연적으로 구성된 ‘혈연가족(血緣家族)’이 이루어 졌으며, 혈연중심의 혼인에 의해 씨족(Clans)제도가 시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씨족제도는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모계씨족사회(母系氏族社會)’와 ‘부계씨족사회(父系氏族社會)’로 나누어졌다.
최초로 구성된 씨족(Clans)은 ‘모계씨족(母系氏族)’사회로 보고 있다. 모계씨족사회의 형성 시기는 후기구석기시대 기원전 3만5천~1만 년까지로 보고 있다. 비록 모계씨족사회의 기초가 후기구석기시대에 시작됐지만 실질적인 모계씨족사회의 발전은 기원전 1만~7천 년의 중석기시대로, 이 시기에는 생산도구가 조립된 도구 즉 예로 석제 창끝과 나무 손잡이의 결합, 석제의 화살촉과 나무 화살대의 결합된 도구의 발전 등이 생산도구의 발전과 기술향상으로 보고 있다. 실질적으로 기원전 7천~2천 년 신석기시대는 모계씨족사회이며 농경(農耕)은 여자에 의해 최초로 시작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최초의 가족(Family)이 시작되고, 가족이 3개 이상이면 씨족(Clans)이 되고, 씨족이 3개 이상이 모이면 최초의 작은 마을(Hamlet)이 탄생되고, 작은 마을 3곳이 한 골짜기에 있으면 생활도구의 물물교환으로 연계된 촌락(Village)이 탄생됐다. 다만 고고학적으로 아직 가족(Family)이 먼저인가 또는 씨족(Clans)이 먼저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못하고 있다. 재미있는 현상은 모계씨족사회에서 ‘아이들은 엄마만 알고 아빠를 모르는(子女只 知基母, 夫知其父)’현상을 야기시켰다. 당시에는 생활상에서 부녀(婦女, 여자)가 생활의 모든 책임을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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