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동기시대(기원전 1천 년~300년)
최초의 금속 사용은 구리(copper)로서 기원전 2천500~2천 년까지 약 500년간 사용됐다. 구리는 자연동(銅)으로서 적철광(cuprite), 휘동광(chalcocite), 남동광(Azurite)과 반동광(Bornite)등의 암석 속에 들어 있다. 다만 구리 자체가 너무 연질이라 이것 자체가 널리 통용되기가 대단히 불편했다. 따라서 구리에 비소(Arsenic) 3% 또는 주석(tin)을 10% 섞으면 매우 경질이 되면서 청동(Bronze)이 된다. 또한 구리에 아연(zinc)을 45% 정도 섞으면 놋쇠(Brass)가 된다. 중국지역에서는 최초 청동기 사용이 기원전 1천500년경이 되며 우리는 현 동북지역인 요녕 남상근(南上根)무덤에서 최초의 청동검이 출토되고, 시기가 약 기원전 9세기로 추정되는데 이와 대단히 유사한 청동검이 부여 송국리 석관(cist)에서 출토된 것이 기원전 7세기 경으로 보고 있다. 내가 1997년 1월부터 1998년 6월 말까지 진주 남강 유역의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 일대의 약 7천 평을 3차 발굴해 청동기시대 주거지, 석관묘와 지석묘를 확인했다. 이 유적은 절대 연대(방사선탄소년대)로 기원전 1천410년~1천120년과 기원전 1천400년~1천110년까지 두 시기가 확인됐다. 다만 여기서 제시하려는 것은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석관묘와 고인돌에서 출토된 표준적인(전형적인)석기, 토기가 확인돼 비교적 자세히 살펴보겠다. 도구제작으로 사용된 석제는 6종으로 사암제, 혈암제, 유문암제, 점판암제, 화강암제와 석영암제 등이다. 출토된 도구로서 가래, 발화석(發火石), 갈돌과 연석(저석, 숫돌), 천공기, 끌, 삼각형 또는 방형, 석도, 낫 등은 사암제이며, 괭이, 돌도끼, 쐐기, 자귀 등은 혈암제다. 때로 돌도끼, 자귀 등이 유문암제로 제작된 것이 있다. 석촉, 석검, 편, 창끝 등은 점판암제다. 돌도끼, 석편제, 삽 등은 혈암과 화강편마암제도 있다. 석영암제의 석편과 석핵도 드물게 확인됐다.
A지구 구상유구 출토 유물은 석부(돌도끼), 타제석기유형의 혈암제 긁개, 화강암제 둥근돌도끼, 돌마치, 사암제 발화석(發火石), 점판암제 화살촉과 창끝, 화강편마암제 삼각형석도(石刀), 사암제 가래, 최강편마암제 삽, 혈암제 돌대패, 유문암제 어망추제작도구, 혈암제 쐐기, 혈암제석부, 혈암제유단석부, A지구 구상유구출토 관옥 등이다. A지구 7호 공방지 출토 유물은 사암제갈돌, 혈암제 석부, 유문암제 쐐기, 사암제 바로하석, 사암제 매부리형 석기, 사암제 보리형 장식품, 사암제 갈돌, 혈암제 쐐기, 사암제 석도편, 사암제 가래, 화강암제 유단석부, 혈암제 괭이, 유문암제 자귀, 화강암제환상석부, 점판암제톱, 삼각형석도, 미완성반원형석도, 사암제 끌, 토기 마연석, 점판암제석촉, 혈암제 창끝, 혈암제 자귀, 점판암제 석검편, 사암제 낫, 토제 대추형 어망추, 토주, 토제어망추, 토제 대롱구슬형 어망추, 토제방추차, 화강암제 방추차와 무문토기 저부 편등이 출토됐다. 상기한 출토물의 기본적인 석제도구는 돌도끼, 돌망치, 발화석, 화살촉, 창끝, 삼각형석도, 가래, 삽, 대패, 쐐기, 석검, 자귀, 낫 끌 등으로 철기시대에 이르러 철제 도구를 제작 될 수 있는 원본을 제시하고 있다. 토제는 어망추, 방추차와 무문토기 평저의 저부편 등이 출토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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