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도구제작(2 - 5) | ||||
연천선사박물관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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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석기 시대(기원전 6천~1천 년) 신석기시대의 연대설정은 지역마다 크게 다르다. 예로 나일강 유역, 티그리스강 유역과 유프라데스 강 유역은 기원전 9천~3천500년까지를 신석기 시대로 확인되고 있다. 한반도 지역은 기원전 6천~1천년까지로 보고있다. 신석기시대는 사람들이 큰 강가에 정착이 시작되면서 농경이 시작돼 기본적으로 밀·보리는 상기한 나일강 유역·유프라데스와 티그리스강 유역에서 최초로 재배됐고, 옥수수는 아메리카 인디안들이 6천 년, 그리고 쌀은 기원전 4천500년에 태국에서 재배돼 인류의 3대 곡식으로 확인되고 있다. 인류가 기원전 1만 년경부터 바람에 의해 옮겨져 자연적으로 재배된 피·기장·수수·조는 현재까지 경기도 연천지역 일부에서 아직까지 재배되고 있다. 동시에 동물의 가축화로 고기, 염소와 닭 등은 인류 최초의 5대 가축으로 확인되고 있다. 신석기시대 가옥은 기본적으로 땅속으로 적어도 1m 이상 굴착해 최초의 정착된 가옥을 마련했다. 이러한 가옥을 움집 또는 수혈식(竪穴式)주거지라고 부른다. 움집은 기본적으로 3가지 과정으로 축조, 발전됐다. 첫째는 원형으로 크기는 길이 5m×너비 5m 정도로 중심부에 비교적 긴 통나무를 세우고 주의에 약 30cm 기둥구멍을 파고 기둥을 세웠다. 주위의 기둥은 기본적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세우고 안쪽으로 경사시켜 놓고 지붕을 가죽 또는 나무 껍질과 기타 갈대 등으로 덮어 비, 햇빛을 가리고 한곳에 허리를 굽히고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집안 중심부 기둥과 입구 사이에 화덕(노지, 불을 피우는곳)자리를 만들어 음식을 끓여먹고 난방시설 역할을 했다. 두 번째는 타원형으로 집자리가 조금더 확장돼 너비 5m×길이 7m 정도의 주거지가 만들어졌다. 기본적으로 노지는 중심부와 입구 안쪽에 설치됐다. 신석기시대 마지막 단계에 가서 방형 또는 장방형의 집자리가 축조됐다. 방형 또는 장방형의 집자리는 예를 들어 남북 벽에 기둥자리를 5개 설치하고, 기둥 거리 약 1m에 그 중심부의 하나는 보통 기둥보다 1m 이상 높게 세우고, 동서는 1m 간격으로 6~8개 기둥을 세우고 기본적으로 문은 동쪽에 두었으며, 남북 벽 중심부 기둥(높은기둥)위에 연결된 기둥을 가로로 올려놓고 동서로 다시 기둥을 올려놓고 그 위를 덮으면 지붕이 되고, 아래의 벽들은 나뭇가지나 흙 등을 발라서 벽채를 만드는 가옥 축조법은 지금까지 거의 유지되고 있다. 상기한 가옥 축조를 위한 지하의 굴착, 농작물의 경작과 신석기시대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물고기잡이, 사냥과 곡식 저장과 음식을 익혀 먹는 필요성에 따라서 신석기 시대의 도구는 기본적으로 짐승뼈, 나무와 강자갈 석기 그리고 토기(토제그릇)등이 제작됐다. 뼈제 도구는 1972년 일본인에 의해 발견된 부산 바닷가의 동삼동(東三洞) 패총(조개더미)가 1970년경 우리 손으로 정식 발굴됐다. 이 패총에서 빗살무늬토기보다 오래된 무문토기도 출토돼 뼈제 작살, 뼈제 창끝, 돌도끼, 빗살무늬 토기편 등도 출토됐다. 뼈제 도구도 기본적으로 후기구석기시대 마지막 단계 기원전 1만 년경부터 사용되기 시작해 창끝, 바늘, 작살과 조각품 등으로 만들어졌다. 다만 뼈제품은 알카성이 풍부한 곳에 잔존된다. 신석기시대의 가장 이른 시기로 추정되고 있는 부산 동삼동 패출 출토의 돌도끼는 마연된 돌도끼(polished stone-tool)이다. 상기한 바와 같이 수혈식 정착 가옥을 축조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길이와 너비가 각각 5m, 깊이가 1m 이상되는 구덩이를 굴착하려면 잘 마연된 돌도끼가 필요하다. 이러한 돌도끼 등은 혈암제 강자갈(shale, 頁岩)과 점판암제가 비교적 많다. 신석기시대의 돌도끼는 거의 장방형의 강자갈, 크기는 길이 15cm×너비 6.3cm×두께 4.5cm 또는 길이 13cm×너비 6.0cn×두께 3cm 정도가 비교적 많다. 이러한 강자갈의 양면과 측변을 고운 모래 또는 사암제의 숫돌에 갈아 부드럽게 만들고 특히 돌 양쪽 끝의 넓은 부위의 양면의 양단 끝을 정성껏 마연해 날카로운 날을 만들어 사용했다. 이 마연된 돌도끼의 좁은 끝은 나무손잡이 끝에 끼워서 사용됐다. 이 마연된 강자갈 도끼는 땅을 굴착하는 데 사용됐을 뿐만 아니라 나무를 벌목하는 데도 사용됐다. 한 예로 덴마크의 3인의 인류학자가 이 돌도끼로 4시간 동안 100여 개의 통나무를 잘라냈다. 이러한 돌도끼의 단면은 대부분 거의 원형 또는 장방형이다. 기본적으로 진흙으로 만들어진 혈암제 강자갈도끼는 돌도끼와 더불어 낚시 바늘도 만들어 사용되고 창끝과 화살촉도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대표적 유적인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 유적의 석제낚시 끝부위가 조립식으로 제작됐는데 모두 혈암제다. 혈암은 진흙으로 만들어졌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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