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남한산성의 의미와 보존활용
(37) 남한산성의 의미와 보존활용
=남한산성 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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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춘섭 광주문화권협의회장 겸 성남문화원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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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은 삼국시대에 쌓아져 현재까지 보존돼 오는 호국의 성지다. 남한산성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인조 임금 때 ‘이괄의 난’을 겪고 난 이후 돌로 쌓아지면서부터다. 이 때 축성의 실무 책임자는 벽암 각성대사(1575~1660)다. 전남 구례군 마산면에 있는 ‘화엄사벽암대사비(華嚴寺碧岩大師碑)’는 병자호란 후 북벌운동의 주역이었던 백헌 이경석 선생이 1663년에 지은 것인데, 이 비문을 통해 벽암대사의 업적을 살펴본다.
# 비문에 남은 벽암대사의 고고한 일생 대사의 법명은 각성(覺性)이고 벽암(碧巖)은 호다. 충청도 보은에서 출생으로 속세의 성은 김해 김씨다. 어머니 조(曹)씨가 자식이 없었는데 목욕재계하고 북두칠성신에게 기도하자 오래된 거울을 꿈에서 보고 임신해 대사를 낳으니, 풍채와 기골이 바르고 엄정했고 눈은 번개처럼 빛났다. 효성이 지극했고 어려서도 노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9살에 아버지를 잃고서 몸이 매우 여위었다가 겨우 나았다. 상을 마친 후 지나가는 승려를 만나고는 출가할 뜻을 품고 마침내 어머니와 헤어져 화산(華山)으로 가서 설묵(雪默)대사를 스승으로 섬겼다. 14세에 머리를 깎고 보정노사(寶晶老師)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부휴(浮休:善修)가 화산에 와서는 벽암을 매우 남다르게 여기고 진실한 법을 권면했다. 곧 부휴대사를 따라 속리산으로 들어갔고 덕유산, 가야산, 금강산 등으로 옮겨 다녔다. 날마다 경전을 보는 것이 이로부터 계속됐고 잠시도 놓지 않았다.
생각함에 거짓이 없다.
# 인조가 벽암에게 남한산성 축조 감독 맡겨 벽암은 여러 사찰을 창건하거나 혹은 중수했는데 지리산 화엄사의 대대적 중창, 송광사, 법주사 가람이 그 중 대표적인 것이다. 광해군 때 스승인 부휴선사가 요승의 무고를 당하니 대사가 함께 서울로 들어갔다. 광해군이 두 대사를 보고 범상치 않게 여겨서 부휴선사를 석방하고 대사는 광주 봉은사(奉恩寺, 현재 서울 삼성동)에 머물게 해 판선교도총섭(判禪敎都摠攝)으로 삼았다. 고관대작과 사대부들이 대사와 친했는데, 그 중 상촌 신흠의 아들이며 선조임금의 사위인 동양위 신익성(東陽尉:申翊聖)과 각별한 사이였다.
# 세수 86년, 법납 72세로 입적 효종은 즉위 전에 벽암대사에게 편지를 보내고 물건을 보내주기도 했는데, 즉위함에 이르자 총섭(摠攝)의 직책을 제수하고 적상산(赤裳)의 사고(史庫)를 지키게 했다. 머문 지 얼마 안 돼 부안의 변산(邊山)을 올려다 보고 남해를 굽어본 후 지리산 화엄사로 돌아와 주석했다. 기해년(1659년) 여름 효종이 승하하자 제사를 올리고 슬피 울었다.
# 역사적 시대적 특징이 면면히 이어지는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옛 광주권의 역사와 문화의 상징적 문화유산으로 경기도 제일의 도립공원이다. 또 다른 명칭인 주장성(晝長城)이나 일장산성(日長山城)은 산성이 자리 잡은 남한산이 지리적으로 주변을 널리 관망하는 곳이어서 해가 길다고 해서 불려진 것이지만, 남한산성의 오랜 역사를 대변해 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성곽 가운데 남한산성 만큼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곽은 한 시대의 필요에 의해 축성돼 그 시대가 지나면 활용이 중단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해 남한산성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축성됐고, 현대사회에 까지도 주민들의 삶을 포용하며 그 존재 가치를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으로는 불교 승려들에 의한 축성의 역사에서 호국불교의 성지이고, 천주교에서는 순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병자호란 후에는 북벌운동의 중심지였고, 한말에는 국권을 수복하고자 무력항쟁을 펼친 의병운동의 거점이 됐을 뿐 아니라 1919년의 독립만세운동과 신간회 활동으로 이어지는 구국의 성지다. 문화적으로는 8도 문화가 융합되는 곳이며, 1626년 11월의 인구 이주정책에서 보이듯 도시계획의 초기 모델이기도 하다. 현대사회에서는 수도권 주민들의 주말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고, 남북분단의 현실에서 호국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기도 한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잠정목록 국제적으로 유네스코에서는 국제적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에 대해 ‘세계유산’, ‘인류의 무형유산’, ‘세계의 기록유산’으로 분류해 보존하고 있다. 이제 남한산성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한 잠정목록에 포함됐다. 세계유산은 1972년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에 의거해 목록에 등재된 유산을 지칭하는 것이다. <※ 다음 주 “큰 역사의 숨소리가 있는 남한산성” 38편은 이번 연재의 마지막 회로서 ‘광주문화권의 발전과 미래상’에 대해 소개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