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석기 시대(기원전 6천~1천 년)
상기한 도구제작 과정의 1~4문장까지는 구석기시대의 석기로서 강자갈석기, 석편석기와 세석편(blade)석기는 기본적으로 석영암과 석영 석기이며, 중석기시대에 이르러서 극소수의 흑요석(Obsidian)제의 석기가 만들어졌음을 기록했다.
신석기시대에 이르러 정착이 시작되면서 토양의 굴착과 통나무의 절단 그리고 물고기 잡이와 사냥에는 혈암과 점판암제의 강자갈을 마연(또는 마제)해 제작된 돌도끼, 낚시바늘, 화살촉과 창끝 등이다. 토기(土器, 그릇)제작은 점토로 만들어진 그릇으로 지역과 종족에 따라서 서로 다른 문양을 나타냈다. 토기는 모래질 점토로 만들어 햇볕에 건조시키거나 또는 불에 구워 사용했다. 기본적으로 장기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불에 구워야만 됐다. 토기의 바탕흙은 편마암(gneiss)의 가루가 섞인 사질점토, 즉 화강편마암류의 점토로서 여기에는 반드시 조개껍질 가루, 운모(Mica)와 석면(Asbestos)이 섞어져야 된다. 토기 그릇을 만드는 3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손으로 진흙을 직접 제작해 원하는 소형 그릇을 만드는 방법으로 수날법(手捏法)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비교적 큰 그릇 제작 방법으로, 두 번째는 흙띠를 감아 올라가는 방법(Coiling)이 있으며, 세 번째는 흙테를 만들어 쌓아 올라가는 방법(ring-building)방법이 있다. 질기릇(토기)는 음식을 불에 익히고, 곡물을 저장하고, 물은 옮기는 목적 등으로 사용되고 지역에 시기에 따라서 주둥이 부분, 몸체, 바닥부분(첨재 또는 원재)등이 서로 다르게 발달되고, 지역과 시기 또는 종족에 따라서 질그릇 상에 처리되는 문양(무늬, 예술작품)이 모두 다르다. 토기는 신석기시대 초기에는 문양이 처리되지 않아 부문토기라고 부르며 그 위의 층위에서는 문양이 처리되어 한반도 신석기 문화의 대표적인 빗살무늬(comb)라고 부른다. 상기한 흙띠 감아올리기 또는 데쌓기로 만든 토기의 대형은 구연부(입지름) 50cm, 높이 40cm 정도의 크기이다. 이러한 빗살무늬 토기는 한반도 전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다. 빗살무늬 처리는 빗처럼 생긴 것으로 눌러서 처리한 것 또는 뼈송곳 등으로 눌러서 처리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질그릇의 기본적인 문양은 3등분으로 나누어 상부(구연부)부조은 뼈송곳으로 처리한 것 같은 문양이며, 중심은 빗으로 처리된 것 같고, 아래(저부)부분은 상부와 같은 방향 처리가 돼 있지만 상부의 것보다 경사된 선의 길이가 길다. 특수한 현상으로 빗살무늬토기 제작인들은 압록강, 한강, 낙동강, 두만강 등 비교적 큰 강가에서 생활했으며 이러한 영향으로 한반도 거의 모든 지역에 확산됐다. 이러한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일대의 독자적 문화 현상으로 보고 있다. 또한 토기 구연부 주위에 일정하게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것을 공열(孔列)이라고 부르며 때로 공열토기라고도 부른다. 이 구멍의 기능은 음식을 익힐 때 공기의 유통과 환기 구멍으로 보고 있다. 신석기시대에는 아직 명확한 뚜껑. 손잡이, 다리(받침대)가 없다. 신석기시대 후기에 물고기 잡는 그물이 제작돼 그물 끝에 매달아 사용하는 토제 어망추가 북한 대동강 유역의 평양 금탄리 유적에서의 금탄리 9호 집자리에서 600여 개가 출토됐다. 신석기시대 무덤유적이 뚜렷하지 않으나 경북 울진군 평해 후포리 유적에서 돌도끼가 130점이 출토돼 춘천교동굴집과 유사한 성격으로 신석기시대의 매장 유적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신석기시대 도구는 마제돌도끼, 화살촉, 창끝, 낚시 바늘, 뼈제 작살, 바늘, 창끝과 토제 토기와 토제 어망추 등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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