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좋은글

성남(城南)의 역사 뿌리

성남까치 2009. 4. 3. 15:43

성남(城南)의 역사 뿌리

 

 한춘섭 성남문화원장


도시 개발의 선두 대열이라 할 수 있는 성남은 현대 도시로서의 짧지않은 역사를 지닌 시승격 36년 나이테로 굵어졌다.
하지만, 성남시민들 조차도 우리 고장의 뿌리를 모르는 이가 의외로 많다. 현대인들은 도시 산업사회의 삶이 다양해 생존경쟁에서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굳이 상급학교 진학 시험과목에도 넣지 않고, 취업 시험과목 조차도 비중을 두지 않는 현실에, 더구나 지역 마을의 역사 이야기는 한낱 묶여있는 책갈피쯤으로 생각되고 있지나 않을까?
성남시는 서울 한강 남쪽에 터를 잡았던 2천여 년 전의 ‘온조백제’에서 역사뿌리를 키워온 산 촌락 농촌이였다.
이 땅이 해방된 이듬해에 경기 광주군 종가(宗家)에서 갈라진 ‘성남출장소’가 문을 열면서 ‘성남’은 ‘남한산성 남쪽 동네’라는 데서 출발했다.
아득했던 옛날 백제 건국의 틀에서 뿌리 찾기가 어려우며, 우리 마을 이야기는 광주군 관할 동네에서 원뿌리가 나타난다.
한강과 위례, 지금의 탄천을 에워싸고 있는 남한산성 숲속과 청계산 자락, 빌딩에 에워싸인 앞뒷산 언덕. 비탈 계곡을 터전으로 이 지역 여러 성씨들의 조상 족보 이야기에서나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

성남이라는 이곳이 서울 한강의 대도시와 더불어 일정부분을 감당해 나가는 발전된 모습은 누천 년 동안, 최근에 와서야 처음 있는 일이다.
근현대사는 물론이요 조선·고려시대 또한, 삼국시대 옛날의 기록상 세촌(중부)-대왕-낙생-돌마 네 시골 마을이 늘 낙향 선비들의 은둔처로서 조상 묘역을 돌보는 여러 세거성씨의 농경·목축업 위주의 농촌민 취락 상태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뛰어난 인물로 출세를 하려면 선대로부터의 고향 논밭을 둥지기 일쑤였으며, 예전의 권문세가 후예라 하더라도 한학 독서로 소일하면서 조상과 웃어른들 잘 섬기는 마을 인심이었음직하다.
간혹 신년마다 한두 차례 일어났던 민란·권력암투·인접 강대국 침략 소용돌이라도 발생할라치면 노동부역, 방어군사로서 백성된 노릇에 충실할 따름이었을 것이다.
온조왕이 어머니 소서노 그리고 열 명의 부하장수들과 수천 명 집단 유민으로 남하해 터를 잡았다는 한강 남쪽지역 하남 이성산성 둘레의 ‘한성백제’ 건국이야기를 통해 진취적 용맹성을 짐작케 하며, 평화로운 나라의 백성을 다스려 보자는 온조와 소서노의 건국 야망이 서린 이곳 성남은, 아들 비류와 온조를 도왔던 천하여걸 소서노(조선 역사상 유일한 창업 여제왕일뿐더러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세운 여인/단재 신채호<조선상고사>)가 터전을 잡은 한 자락이다.
이에 한강으로 흘러드는 성남시 ‘탄천(숯내·숲내)’ 16㎞의 물길 주변 들판이 우리 문자가 없었던 신화 속 역사에서도 농경생활로 끊임없이 대가 이어졌고, 역사의 위대한 인물 묘택(사당)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충효·청백리 큰 인물들에 의해서 재조명되고 있는 성남 역사의 흔적은 향토문화 유산으로 오래 남아 있게 될 것이다.

한편, 내란외침이 극성부리던 고려시대, 80년 가까이 우리를 괴롭혔던 몽고침탈에 있어 성남 관할의 광주군민 항전 이야기 또한 가슴 뭉클한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1231년 당시 광주부사 ‘이세화 묘지명’에서 ‘광주백성들은 오랑캐 군사들이 포위·공격하였으나 능히 굳게 지켜 함락되지 않았으니’라는 고종 임금 때 적장 살리타이 섬멸작전의 이야기가 ‘고려사’ 권80에 근거함으로써 이에, 남한산성 일원의 광주·강동·강남·하남·성남시 주변 지역이야말로 ‘나라 사랑’ 고장 중에도 영원히 빛날 호국의 성지라 할 수 있다.
또한, 고려말 정치가·학자로 대표될 만한 중원구 하대원동의 둔촌 이 집(1327~1387) 선생을 비롯해 조선역사와 일제 식민지 555년의 기간 중에 정묘·병자호란 때 남이흥, 이상안 무장들 순국 자취, 삼학사의 충성 발자취, 임진·정유왜란 때의 분당구 중앙공원 안의 이경류 순국전사 이야기가 다름 아닌 청사에 우뚝한 민족정기요, 한국사상의 지렛대와 다르지 않다.
이 외 대한제국 근현대사 안에서 항일 의병장 남상목, 윤치장 선열과 초지일관했던 의절로 일생을 다 바친 일제강점기의 3·1만세운동 애국자 한백봉, 한순회, 남태희 등 시대별 큰 인물 숨결이 성남시 근간으로 남아 있어, 이들 뜨거운 애국혼령의 흔적들은 오늘날 성남 향토역사의 뿌리가 된다.
1945년 해방 이후 60여 년의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피 흘렸던 순국자 혼령들과 살신성인으로 나라를 떠받친 정치가, 학자, 문인 외 효도 덕행의 삶이 청계산, 영장산 능선에 유택으로 남아서 성남시 전통의 문화와 역사를 증거로 하고 있다.

 김대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