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와 복순이는 생후 2, 3개월이 된 2006년 12월에 유명한 드라마 제작회사의 박인택 사장이 우리 집에 데리고 온 진돗개 한 쌍의 이름입니다.
박 사장은 작품 판매를 위한 해외 출장이 잦고 회사 내부 일처리에도 바쁜데 틈만 나면 화초에 물주고 정원 손질을 했는데 강아지 사료까지 챙기고 예방 주사도 손수 놓았습니다. 타고나야 하는 일이지 아무나 할 수 없겠다 싶었습니다. 곰돌이와 복순이는 서로 사랑해 2007년 7월에 암수 6대 1로 새끼를 낳았는데 제일 예쁜 놈을 골라 우리 부부는 곰순이라 이름지어 주고 지금 같이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신랑 볼 때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곰돌이와 곰순이 부녀는 정초 벽두에 큰 사고를 당했고 극적으로 살아난 얘기인 즉 이런 것입니다. 곰순이가 젖 떨어질 때가 되었을 무렵 곰돌이 일가는 박 사장을 따라 터가 꽤 넓은 회사 마당으로 이사했는데 곰돌이는 성질이 앙칼지고 새끼 사랑이 우선일 수밖에 없는 복순이로부터 남편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곧잘 물리기도 해 상처가 많았습니다. 점잖으면서 꿩 사냥에는 비호같이 날쌨던 곰돌이가 불쌍해 임시로 우리 집에 와서 딸 곰순이와 지내도록 했는데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아침에 나와 보니 진돗개 부녀가 없어졌습니다. 외딴 곳이라 근처 겨울 논밭에 숨을 곳 없고 마을 사람들에게 백방으로 수소문해도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전에도 있었던 일이지만 보신탕집에 넘기는 사람들의 소행일 것이라고 상상을 하는 내 자신이 창피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입니까? 정확히 3주일 지난 날 아침, 현관문을 여는데 곰순이가 나타났습니다. 살펴보니 무섭게 질긴 쇠줄로 허리가 감긴 채로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쇠줄을 끊어 풀고 수의사의 응급 치료를 받아 살아났습니다. 짐작하니 야생동물을 잡으려고 밀렵꾼들이 오래전 동네 뒷산에 설치했을 법한 올무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원기를 회복한 곰순이의 눈치가 이상했습니다. 전에 잘 가지 않았던 숲 속으로 나를 고집스럽게 안내하려는 기색이 뚜렷했습니다. 아빠가 그 쪽에 있으니 빨리 구해달라는 몸짓이 틀림없습니다.
눈 덮인 야산 계곡을 두 시간씩 이틀이나 곰돌이를 찾아 헤맸으나 실패했습니다. 곰순이가 어느 지점부터는 전혀 방향을 못 잡고 아빠의 위치를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박 사장 팀의 수색작업도 허사였습니다. 곰돌이가 이미 절명했거나 누군가에 의해 장소 이동이 됐기 때문에 근처까지 찾아온 곰순이와 전혀 생명기운의 교신이 통하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열흘도 더 지났습니다. 2월 6일, 음력으로 섣달 그믐날 아침 10시, 산비탈 경사진 방향으로 무심코 올려다보는 나의 시야에 쓰러질듯 비틀거리는 곰돌이가 나타났습니다. 발채에 무너져 내리는 곰돌이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울면서 안심하는 것도 같고 살 속으로 깊이 파고든 쇠줄의 고통을 빨리 덜어 달라는 애원, 머리통만 제 모양이고 뼈와 가죽만 남아 말라 비틀어진 몸뚱이에 느껴지는 극도의 갈증과 허기, 이런 것들로 참혹하기가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도무지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마침 공사 관계로 전화를 주었던 포클레인 기사에게 강력한 절단기를 부탁해놓고 우선 급하게는 미지근한 물을 조금 마시게 했습니다. 주위를 살피니 동해산 황태 머리가 십여 개 벽에 걸려 있었습니다. 물을 많이 잡아 푹 고우고 마지막에 뜨겁지 않게 온도를 조절한 황태국물을 마시게 한 것이 응급조치로서 적중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니 눈빛이 살아나고 이어서 편하게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결국 박 사장의 용단으로 필요한 외과적 수술 다 받고 회복을 위한 입원치료를 충분히 거치고 지금은 건강하고 늠름한 한 마리 진돗개 성견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그런데 곰돌이가 산중에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올무 덫에 걸린 고통의 35일 만에 돌아왔는데 하루만 늦었더라면 우리 부부는 설날을 이용해 4박5일 삿포로 여행을 떠나 빈집이었을 텐데 만약 그랬으면 어떻게 됐을까... 결코 우연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