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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학위를 통해 본 현대사회의 신화적 구조

성남까치 2007. 8. 20. 13:52
 가짜 학위를 통해 본 현대사회의 신화적 구조
 장 보드리야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포스트모던 철학자다. 그는 현대 사회의 소비지향적인 성격에 내재한 신화적 구조를 밝히는 데 기여한 학자다. 소비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매체에 의해 조작된 허구적 이미지(시뮬라크르)에 의해 세뇌당해 일어나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소비는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에 담겨진 가치적 기호를 소비하는 것이다. 명품은 품질이 아니라 이미지화된 기호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짝퉁이 만들어지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사람들은 고급 외제 자동차와 명품의 물질적 가치보다는 거기에 담겨 있는 사회적 기호를 소비하는 것이다.
 조작된 허구적 이미지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를 그는 시뮬라시옹의 사회라고 명명한다. 시뮬라시옹이란 허구적 이미지를 조작해내고 만들어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 바로 시뮬라시옹의 세상이다.
 우리 사회는 소비사회라는 현대적인 의미의 시뮬라시옹의 시대에 접어든지 오래됐다. 거리이든 집 안이든 광고나 미디어에서 벗어나 살 수 없다. 시골에 내려가도 원조집이라는 광고판에 접하게 된다. 원조라는 이미지만 접할 뿐 누가 진짜 원조인지는 확인할 도리가 없다. 우리 사회는 전통과 현대가 뒤섞인 착종된 사회다. 그리고 이러한 착종과 더불어 전통적 모순과 현대적 모순이 상호작용해 더 심화하는 사회다. 우리 전통적 유교 사회는 명분과 허례에 집착하는 성격이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점은 출세지상주의와 학벌주의로 연결된다.
 현대적 소비사회와 전통적 학벌주의가 만나서 만들어진 시뮬라크르가 바로 가짜 학위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대검찰청은 최근 사회 각 분야에 만연한 가짜^허위를 추방하고, 우리 사회의 `신뢰 인프라'를 구축해 성숙한 선진사회로 진입키 위해 전국 13개 주요 검찰청에 `가짜 학위 등 신뢰인프라 교란사범 특별단속'을 지시했다. 이에 검찰은 지난 9일부터 올해 말까지 지방검찰청의 특별수사전담부서에 가짜 학위 등 신뢰인프라 교란사범 단속 전담반을 편성하고 유관기관과 긴밀히 협조해 ▲학위 등 교육지식 분야 ▲자격증 등 전문가 인증 분야 ▲규격, 품질, 안전성 등에 대한 국내 외 인증 분야 등 3개 주요 분야의 신뢰인프라 교란사범에 대해 집중적으로 단속할 예정이라고 공표했다.
 법으로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가짜와 허위를 예방하겠다는 대검찰청의 문제의식에는 동감한다. 이는 가짜와 허위의 문제가 물질적 차원에서 지식적 차원으로 옮겨갔음을 보여준다. 산업시대의 가짜의 대명사가 짝퉁이라면 지식시대의 대명사는 가짜 학위이다. 물론 가짜와 짝퉁을 만든 사람은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은 소 읽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즉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이러한 가짜와 짝퉁을 유발하는 사회적 구조이다. 그리고 이를 악용하는 자본과 권력이다. 신정아는 가짜 학위로 단지 대학사회와 문화계를 흔들어놓았지만 황우석은 우리나라 전체를 흔들어놓았다. 신정아는 대학사회와 문화계가 지닌 병든 학벌주의의 문제점을 보여 줬지만 황우석은 병든 국가주의와 이를 조작한 정치권력과 경제 자본의 총체적 문제점을 보여줬다.
 대검찰청은 권력^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수사기관으로서 개인뿐만 아니라 이들 권력과 자본도 수사해야 한다. 권력^자본의 가짜쇼에 비하면 신정아는 단순한 깜짝쇼에 불과하다. 물신주의, 국가주의, 학벌주의는 우리 현실이 가짜를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만드는 한국판 시뮬라시옹의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러한 현실이 살아있는 한 대검찰청의 이러한 진지한 노력도 또 하나의 시뮬라시옹의 강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김 성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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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매일 2007/08/20 일자 지면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