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는 그렇게 울었다* 어

[스크랩] 명량해전과 재항고

성남까치 2007. 1. 18. 14:07
12척의 배와 120여명의 군사가 우리 전력의 전부였다. 이에 비해 적의 전력은 전함 133척에 군사 3만. 더구나 직전의 전투에서 대패한 아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반대로 적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런 상황에 처한 장수라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이것은 1597년 10월.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었을 때의 상황이다. 이 절망적인 상황을 놓고 조정 중신들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순신에게 바다를 포기하고 육전에 합류하라고 종용했다. 만약 그 당시 삼도수군통제사가 이순신이 아니었던들 누구라도 조정의 명에 따랐을 것이다. 객관적인 전략으로 보아 승산이 희박한데다가, 조정의 뜻을 거슬러 왜군과 전투를 벌여봐야 자신에게 아무 득이 될 게 없으며, 패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모든 책임을 자기 혼자 뒤집어 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순신은 달랐다. 그는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모두의 예상을 깨고 승리했다. 이 전투에서 왜군은 전함 31척이 격침되고 8천여명의 사상자가 생기는 피해를 입은 채 패퇴했고 이후 임진왜란의 전세는 극적으로 반전되었다. 이것이 바로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명량해전'이다.

이 기적같은 승리는 이순신이라는 위대한 지휘관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이순신의 가장 위대한 점은 그가 '확신의 지휘관'이었다는 거다. 모두가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를 들어 패전을 예견하고, 패전 후의 상황만을 염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순신은 바다를 포기하면 안 되는 분명한 이유를 들어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이순신이 생각한 바는 이렇다.

"지금까지 왜군이 호남과 충청을 공략하지 못한 이유는 오직 조선 수군이 바닷목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직전에 벌어진 칠천량 전투에서 조선수군이 거의 전멸하다시피하여 고작 12척의 배만 남은 지금이야말로 왜군으로서는 호남과 충청을 공략할 절호의 기회이고 지형이 평탄하고 곡창지대인 호남과 충청이 적의 수중에 떨어진다면 이 전쟁이 왜군의 승리로 끝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따라서 조선 수군은 절대로 바다를 포기할 수 없으며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수밖에 없다."

즉, '반드시 싸워야 하기 때문에 싸운다'는 것이 이순신의 생각이었다. 조정 중신들 모두가 싸워보지도 않고 패배를 점치고, 패배 후의 상황만을 염려하고 있는 상황, 이러한 상황에서 조정의 뜻을 어기고 전투를 강행하여 패하기라도 하는 날에 자신에게 돌아올 비난과 책임... 이런 것들은 이순신의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장수는 꼭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른 일체의 잡다스런 것들을 고려하면 아니 되는 거다. 이순신은 자신이 싸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었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승리에 대한 '확신'이다. "싸워야 한다"는 것이 대전제라면,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는 어쩔 수 없는 상수(常數)다. 따라서 대전제를 의심하고 상수를 고민하는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일이다. 장수가 온 힘을 다 기울여야 하는 변수(變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병사들의 사기관리인데 승리에 대한 '확신'이야 말로 사기관리를 위한 으뜸전략인 것이다.  

우선 장수는 스스로 승리에 대해 확신해야 한다. 장수라는 자가 대전제를 의심하고 상수 따위나 고민하고 앉아 있으면 승리에 대한 확신이 생길 리 없으며, 장수가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병사들에게 그것이 있을 수도 없다. 이순신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신에게는 아직 전선 12척이 있습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목숨과 바꿔서라도 이 조국을 지키고 싶은 자 나를 따르라!”




대법원에 대한 재항고를 놓고 고위직을 중심으로 말들이 많은 모양이다. 인용될 가능성이 없다는 분석에서부터 대법원에서 기각될 경우 이런저런 문제가 예상된다는 염려에 이르기까지... 하여간 하는 꼬라지들이 임진왜란 때의 조정중신들과 어쩜 그리 닮았는지. '생각하는 부류들'에 대해 이제 아주 신물이 난다.  

재항고는 (준항고와 마찬가지로)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 가지 않아야 할 이유를 누구라도 100개도 더 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 자빠져 있는 한 영원히 그 길을 갈 수 없다.

생각해보라. 무엇이든 바꾸려면, 얻으려면, 도전하려면...... 그렇다면 의당 몇가지 어려움과 부작용과 위험 쯤은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어려움과 부작용과 위험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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